시인 오은 인터뷰 중 아름다운



-많은 사람이 시인 '오은'에 대해 '단어를 참 잘 가지고 논다'고 말한다. 비결이 있나.
"단어를 사랑한다. 어렸을 때부터 국어사전을 매일 봤다. 사전을 딱 펼쳐서 '아지랑이'처럼 처음 발음했을 때 '말 맛'이 있는 단어를 그 날 하루 동안 꼭 써먹어 보려고 했다. 맥락에 맞든 그렇지 않든 발설을 했을 때 내 단어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공부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내가 쓰는 시도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보니 단어가 단어를 불러들이는 글이 많다."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뭔가.
"돌이켜보면 블로그 닉네임으로 만들었던 '불현듯'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을 뒤흔들어버렸다. 불현듯 시인이 되었고 불현듯 사회학과에 갔고 불현듯 큰 사고를 당했고 불현듯 빅데이터 회사에 갔고 불현듯 사표를 던졌다. 평소의 나는 되게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근데 큰 결정들은 불현듯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결단력이 발휘되었다. '불현듯'의 어원이 또 뭔 줄 아나. '불켠듯'이다. 단어 뜻도 예뻐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어다."



-
최근 오은 시집을 읽고 있다. 
아직 다 읽지도 못했을 뿐더러, 설령 다 읽더라도 시집 한 권으로 그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드는 생각은. 
단어 자체들만으로 시를 시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커다란 은유와 함축이 있지 않지만 단어들의 짜깁기만으로도 시가 충분히 시답게 완성될 수 있다는 것.

그중 좋았던 시들.




미시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사람이 울며불며 매달린다

여기 있습니다.
사람이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없던 법이 생기던 순간,

몸이 무너졌다
마음이 무너졌다
폭삭
억장이 무너졌다

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단 한 번도 여기에 속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처음처럼 한결같이 서툴렀다

사람이 사람을 에워싼다
둘러싸는 사람과 둘러싸이는 사람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어색해한다
사람인데 사람인 게 어색하다

여기서 울던 사람이
길에 매달려 가까스로 걷는다
집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집에 가는 길에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
익숙한 냄새가
난다
안녕
어떤 말들은 안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속이 상한 것은 
겉은 멀쩡하기 위한 거지

겨우내 겨우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봄은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푹푹 꺼지는 땅 위에 사람이 서 있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을 겁니다.

*미시감: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처음보는 것으로 느끼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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