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한 기도-김승일 아름다운


나라는 것이, 나라는 것이 시작되면, 보는 것이 시작되고. 손자들이 젓가락으로 상을 세 번 두드린다. 듣는 것이 시작되면.
잘 되게 해주십시오.

한 명씩 엎드려서 기도를 한다.
술잔을 세 번 돌린다.

듣는 것은 아까 시작되었지. 듣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시작이 없어. 잘되게, 잘되게......
나는 듣는다.

꿇어앉은 고손자 애는 잔 돌릴 차례의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세 번씩 꺾어 따르고.
나는 그걸 하염없이 보고 있었고.

고손자는 키가 큰 청년. 
술 받고 웅크려서 눈을 감는다.

무슨 기도를 하지? 고손자는 한동안 뜸을 들이다. 할머니, 언제나 건강하세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죽은 사람한테 건강하라니?

자신이 기원한 건강에 대해. 고손자는 의문을 품고. 손자의 의문을 듣는 중이다. 얼굴도 모르는 고조 할머니.
그녀의 건강을 네가 빌었고. 건강이라는 것이 시작되었어.

이상한 건강을 묵상하면서.
고손자는 한쪽을 바라보는데.

어쩌면 저 애가 날 보는 걸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애가 내 쪽을 바라보아서. 내 쪽이라는 것이 시작이 되고.
생각이라는 것이 시작을 하고.

고손자가 어슴푸레 살 향길 풍겨. 냄새 맡는 것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게 너의 살 향기라면. 어째서 진작 풍기질 않고. 새삼스레 방금 시작된 걸까?
의심이라는 것이 시작을 하고.

나는 믿으려고 킁킁거린다. 고손자 애한테 바짝 붙어서. 생각이라는 것이 시작됐으니.
이것은 붙는다는 생각일지도.

손자들이 차례로 술을 돌리고, 돌렸던 술을 나눠 마시고. 고손자의 입술이 잔에 닿는다.
입김이라는 것이 잔에 어리고.

입술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수족은 제쳐놓고 달랑 입술만, 입술만 자그맣게 시작되어서.
자꾸만 더 작아지기 시작하는......

나는 봤다. 입술의 시작과 끝이. 
거의 동시에 시작되는 걸.

시작과 동시에 시작투성이. 수족이 없는, 입술이 없는, 끝장날 건덕지가 없는 나는.
어쨌든 바짝 붙을 수 있지. 바짝 붙어서 킁킁거리지.

이것이 붙는다는 생각이라면. 생각이 온종일 시작된다면. 손자들이 차례로 술을 돌리고, 돌렸던 술을 나눠 마시고.
고손자의 입술이 잔에 닿는다.

증손자 중에서도 가장 큰애가. 내년부턴 너희들의 증조부까지. 증조부까지만 지내겠다고.

말하는 것을 쳐다본 다음. 보는 것은 내가 시작된 다음. 듣는 것도 내가 시작된 다음. 바짝 붙는다는 생각 속에서.
다음은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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